전세난 부추긴 보금자리주택, 5년 새 전셋값 39% ↑…진짜 서민 ‘ 고통’

2013. 3. 10. 10:25세상사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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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주택만큼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정책은 당분간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무주택자에게는 보금자리가 로또라고 불릴 만큼 희망의 아이콘이었지만 집값 하락의 주범으로 지목 받았기 때문이다.

보금자리주택 사업은 기본적으로 '반값 아파트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위해 탄생했다. 주택의 원가는 땅값과 건축비로 구성된다. 그런데 건축비는 낮추기가 쉽지 않다. 집을 지을 때 들어가는 시멘트나 철근 같은 자재의 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반값 아파트를 짓기 위해 저임금 노동자랄 수 있는 건설 노무자들의 임금을 반값으로 삭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어느 지역에 누가 짓든 건설 원가는 비슷하게 나온다. 그런데 서울에서 분양되는 아파트 값이 지방에서 분양되는 아파트 값보다 훨씬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땅값'의 차이다. 비싼 땅 위에 짓는 주택이 싼 땅 위에 짓는 주택에 비해 비싼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집값을 낮추려면 기본적으로 땅을 싸게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MB표 친서민 정책, 보금자리주택도 결국 '실패'
그런데 땅은 마음먹은 대로 공급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새만금과 같이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땅이 늘어나기는 하지만 수도권과 같이 주택 수요가 많은 곳에 택지를 공급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딜레마를 획기적으로 해결한 것이 바로 보금자리주택이다. 대도시 주변의 그린벨트를 택지로 개발하자는 아이디어다.

이를 통해 기존 택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택지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린벨트라는 것이 기존 도심이 무분별하게 확장돼 위성도시를 삼키는 현상, 즉 연담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것인 만큼 위성도시보다 도심 접근성이 뛰어난 곳이 대부분이다. 결국 좋은 입지의 택지를 싸게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바로 보금자리 주택 사업이다.

이를 통해 MB 정부가 얻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첫째는 친서민 이미지 구축이었다. 참여 정부 때 수도권 주택 값이 급등하면서 자산의 양극화가 심화됐다.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보금자리주택을 통해 서민들이 쉽게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든 제도다. 서민에게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선물한 것이다.

둘째는 이를 통해 주택 시장의 안정을 가져오고자 했다. MB 정부는 '사전 예약제'를 고안해 냈다. 이 법에 따르면 택지를 모두 수용한 후 일정 부분 공사가 진행돼야 분양할 수 있다. 그러나 적법한 절차를 따라 분양하려면 수년이 걸릴 가능성이 있기에 불이 붙어 있는 주택 시장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등장한 것이 사전 예약제다. 이 제도는 법적으로는 분양할 수 없는 단계지만 분양과 같은 효과를 누린다. 그만큼 MB 정부에서는 보금자리주택을 통해 주택 시장을 안정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셋째는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통해 유주택자, 정확히는 1가구 1주택자의 비중을 늘리려고 했다. 유주택자는 사회 안정 희구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보다 잃을 것이 있는 사람을 통제하는 게 수월하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무리할 만큼 많은 대출을 서민에게 해줘 유주택자로 만들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집에 애착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기 집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다.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으려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사회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보금자리주택을 통해 유주택자를 늘리려는 것은 이런 방향에 부합한다. 유주택자는 보수적 정치 경향을 가질 확률이 높으므로 당시 한나라당 정권이었던 MB 정부로서도 잃을 게 없는 정책이었다.

넷째는 정부 부채를 늘리지 않기 위해서다. 내 집 마련을 하기 어려운 계층을 위해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은 정치인에게는 인기 있는 공약이다. 하지만 재원이 문제다. 누군가의 돈으로 주택을 지어야 임대를 주든 어떡하든 할 것이다. 임대주택에 대해 임대료를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집을 짓는데 들어간 자금의 이자 부분 정도이지 원금을 갚을 수준은 안 된다. 원금을 분할 상환할 수 있는 수준의 경제력이라면 임대주택에 들어올 자격도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임대주택을 공급할 때마다 적게는 7000만 원에서 1억 원까지 부채가 늘어난다.

현재 임대주택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채가 120조 원을 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LH로서는 이 빚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분당에 있는 LH 사옥을 처분한다고 해도 1주일 치 이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부채는 회계상으로 공기업에 넘겼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몫이다. 언젠가는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주택을 더 늘리면 정부의 재무 건전성을 훼손한다는 딜레마에 봉착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금자리주택의 상당 부분을 분양 주택으로 하게 된 것이다. 분양가로 원가의 대부분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부채를 늘리지 않고도 공공재 성격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값 잡았지만 전셋값에 당해
보금자리주택은 주택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는 큰 효력을 발휘했다. 참여 정부(2003년 1월~2008년 1월) 동안 아파트 매매가는 34.4% 정도 오른 반면 MB 정부(2008년 1월~2013년 1월) 때 아파트 매매가는 16.3% 상승에 그쳤다. 참여 정부 때 상승률의 절반도 되지 않으면서 물가 상승률 정도의 집값 상승을 보였던 것이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여기까지는 정부로서는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다. 참여 정부 5년간 12.1%에 그쳤던 전셋값 상승률이 지난 5년간 39.2%로 급등했다.

이는 당첨만 되면 상당한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기에 흔히 '로또'라고 불리는 보금자리주택 당첨을 위해 집을 살 여력이 있는 사람들까지 무주택자로 남아 있고 심지어는 있는 집마저 파는 사람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에 전세 시장에서 전세금을 올리는 주범(?)이 됐다. 돈은 여유가 있으나 무주택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세를 사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작 돈이 부족해 세를 살 수밖에 없는 진짜 서민들이 전세 대출을 받는다든지 기존 주거지에서 밀려나는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했다. 서민에게 쉽게 집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보금자리주택 사업의 취지는 좋았지만 현실에서는 극소수의 운 좋은 당첨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서민에게 고통을 주게 된 셈이다.

보금자리주택은 땅을 싸게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전제 조건에서 시작한 사업이다. 하지만 주택 수요가 몰리는 곳에 택지를 무한정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보금자리주택 사업은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까지 환영받지 못하고 있기에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새 정부에서는 시장의 기능을 살리는 정책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