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지리산닷컴 생각 / 시골에서 조용하게 살고 싶다고?

2012. 3. 8. 22:12전원 생활&노후

일주일 사이에 귀농귀촌 관련한 문의가 네 건 있었다. 같은 답변을 보냈다.
뭐 요지는, ‘저는 귀농귀촌 전문가가 아닙니다.’ 라는 말과 구례에 근거지를 둔 귀농귀촌카페 두 곳의 주소를
알려주는 정도다. 보통 일주일에 한 건 정도의 귀농귀촌 관련한 문의 메일을 받는다. 이 문제는 이전에 이곳에서
긴 글로 언급한 ‘시골에서 집을 구하고 싶다고?’ 라는 글의 서두에서 밝힌 내용이 기본적인 나의 입장이다.
즉, ‘답변하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곳을 오랫동안 본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연히 이곳을 알게 되었거나 누군가의 추천을 받았거나 내 책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을 읽고 난 후
바로 메일을 보내오는 사람이 열에 텐이다. 앞으로도 그런 메일은 나에게 계속 날아 올 것이란 소리다.
그래서 상시적인 답안을 준비해야겠다. 두 가지 맥락에서 이야기 할 것이다. 나의 입장과 나의 경험.







나는 귀농귀촌에 관심이 없다

일상적인 내 입장은 귀농귀촌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그러하다.
나는 스스로 귀농귀촌을 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다. 단지 이곳에서 ‘외지껏’일 뿐이다.
시골에 사는 모든 외지껏이 귀농귀촌이라는 패러다임에 속할 이유는 없다.
종로에서 개포동으로 이사 가는데 특별한 준거 틀이 필요한가? 나는 서울에서 구례로 이사를 온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귀농이다 귀촌이다 이거다 저거다 의미를 덧씌우는 규정을 할 필요는 없다.
그냥 외지에서 이사 온 놈일 뿐이다. 그래서 귀농과 귀촌이라는 범주 속에서 의견이나 도움을 물어오면 난감하다.
왜 당신 이사 문제를 나에게 묻는 것이지?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이주는 서울에서 구례로 옮긴 일이 아니라
부산에서 서울로 옮겼을 당시였다.
여기까지의 내 이야기는 단지 성격이 까칠해서 나온 짜증스러운 소리일까? 아니다.
이제까지 내가 받은 메일 중 열에 아홉은 내 기준으로는 질문의 구체성이 없었다.
질문이 막연하면 답변도 흐릿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볼 때에는 이주의 불안감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대화상대를
원하는 것이었다. 질문 당사자가 귀농귀촌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단지 ‘아, 시골에서 한 번 살아 보고 싶다아~’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 물론 내 잘못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ㅅㅂ 억울하지만 미필적 고의에 의한,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에 의해 책 제목에
‘시골’과 ‘농사’가 들어갔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 제목으로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있다.
하나의 책은 관념을 양상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오든 알흠다운 현상은 필자 몫일 수밖에 없다.
내가 강하지 않게 원한 책 제목은 ‘행복하십니까’ 였다. 밋밋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2010년 10월 이후로 이곳에 회원가입한 주민의 80%는 책과 관련이 있고 자기소개에서
귀농귀촌을 이야기한 분들이 많다. 금년 6월 전에 그 책 2권이 나올 것이니 이런 현상은 강화되면 강화되었지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여, 나도 귀농귀촌에 관심을 가져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곳을 지속적으로 지켜보신 분들은 한 번 냉정하게 판단해 보시라.
내가 귀농귀촌에 대해서 이야기를 얼마나 했을까? 자세히 살펴보면 나는 단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사람들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했을 뿐이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과 식당과 사건사고에 대해
블로그에 사진 올리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서울 시절에도 사진 올리고 글 쓰고 주절거렸다.
그 장소가 연신내에서 구례로 바뀐 것뿐이다. 단지 그리 살고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지 귀농하시라거나 귀촌하시라는
권고를 하지는 않는다. 사는 곳이 내 생각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사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이사’는 귀농귀촌이라는 범주 속에서 결정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인 귀농귀촌 질문과
그런 일과 관련한 단체나 매체의 문의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불친절했다.

귀농귀촌이 하나의 추세라고 한다. 그래봤자 그 수가 얼마나 되겠나? 살기 팍팍하니까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삶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어 그런 생각이 형성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도시 생활이 만족스럽다면 뭐 하러 시골로의 이전을 생각하겠는가. 그것에 ‘귀농귀촌’이라는 개념을 부여하고
범주를 엮어서 하나의 시장으로 바라본다. 그런 이야기를 다루는 카페가 많고 그 회원 수도 수만 명에 이른다는
소리만 들었지 그런 카페에 몇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 자세히 살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원하건 원하지 않건
정보란 것은 억지로라도 나에게 흘러들고 주입되고 모니터 표면에 글씨로 나타나니 전혀 모르기란 참 힘든 노릇이다.
더구나 뭔가를 제안해 오는 매체나 그런 카페에서 메일이 오면 읽어봐야 거절할 수 있으니 정보를 흡수당할 수밖에.
그렇게 입수되는 기획안을 통한 개략적인 그들의 관심사는 주로 내가 흥미를 가지기 힘든 이야기들이다.
성공사례, 마을기업… 내가 볼 땐 그런 제안들은 이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른바 농촌사업 컨설팅업체의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솔직하게는 그들이 농촌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인지, 농촌문제를
하나의 시장으로 설정한 ‘사업’에 관심이 있는 것인지 살짝 의심스럽기도 하다.







매뉴얼은 불가능하다

“시골은 ★★★하다던데 정말 그래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유형이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가 ‘★★★’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가령, ‘시골은 텃세가 심하다고 하던데 정말 그래요?’ 이런 질문에 대해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거의 ‘그 동네 안경 낀 사람 있다면서요?’와 같은 질문 아닌가. 그렇다고,
‘네, 저희 마을에는 안경 낀 사람이 있습니다.’ 라는 답을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사회대학원 형식으로 귀농귀촌과 관련한 커리큘럼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만난 적도 있다.
그게 그렇게 배워서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수요와 공급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대놓고 웃었지만,
나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사람들은 일종의 매뉴얼을 원하는 것 같다. 처세술 책이 잘 팔리는 사회였으니
전혀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만 좀 그렇다. 그냥 포괄적으로 도시나 시골이나, 미국이나 인도나 모두 사람 사는 일이다.
목수학교나 흙집학교처럼 기능을 배우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흙과 짚, 물의 비율을 어떻게 하면 벽돌의 내구성이
강해진다거나 감자는 언제 심고 밭고랑을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거나 하는 일은 구체적인 정보와 조언이 가능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는 일은 ‘재미있는 이야기’ 이상의 기능을 발휘하기 힘들다.
시골살이에 관한 사례를 많이 접하면 귀농귀촌에 도움이 될까? ‘무조건 인사하라’ 이런 내용 말고 집을 짓기 위해
측량을 했는데 옆 집 사람과 분쟁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백한 가지 방법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집수리를 하다가 사라진 설비업자를 체포하는 백한 가지 방법 같은 것도 불가능하다.
집 뒤 논에서 물이 흘러들어 올 경우 원만하게 해결하는 백한 가지 방법 같은 것도 매뉴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얼마나 황당했는지에 대한 넋두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전부터 주장하지만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을 볼 수 있다!’ 가 매뉴얼 표지의 제목으로 유효할 뿐이지 내용은 구성할 수 없다.
물론 그런 경우의 수를 나열하고 사례를 전달하는 정도의 기획과 출판은 가능할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같은 귀농귀촌 희망자 낚시용 책으로 적합할 것이다. 어쩌면 팔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다. 인생이 ‘판례’에 입각한 ‘방법’의 순차적 나열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있는 질문 몇 가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는 형식으로 억지 매뉴얼을 만들어 보자.
단, 집 문제는 가장 많은 질문이니 이전의 글(생각/시골에서 집을 구하고 싶다고?)로 대신한다.







FAQ1 -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믿거나 말거나 ‘시골에서 살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라는 질문이 많다.
질문이 막연하니 나의 답변은 지극히 간명할 수밖에 없다.
“돈을 준비하세요.”

FAQ2 - 시골에서 농사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이런 막연한 질문도 의외로 많다.
뭔 직업상담소도 아니고. 결론적으로,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구례의 전업농은 25% 정도 된다. 시골이라고 모두 농사짓는 것은 아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증명인 <농지원부>라는 것을 가진 사람은 많이 있지만 허수인 경우가 많다.
25% 라는 통계는 거동 가능한 노인들의 수와 일치할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75%는 뭐하고 있는가?
뭐 구례로 보자면 인구가 대략 이만 칠천 명 정도로 보고, 공무원이 대략 오백 명 정도, 교사, 의사, 농협과
KT, 우체국, 새마을 금고 직원을 통 털어 오백 명 안 될 것이고. 승려를 비롯한 종교 관련 직장을 가진 사람,
식당, 여관,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에 존재해야 할 모든 가게들… 조사해 보면 많이 나올 것이 분명한
이념적인 백수와 어쩔 수 없는 백수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유형이 나누어질 것이다. 혼자만의 귀촌이냐 가족 귀촌이냐.
두 가지 경우는 조건 자체가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에 전혀 다른 맥락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혼자라면 아무래도 경제적인 압박감이 덜할 것이다.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한 가지 일만 하는
경우는 드물다. 안정적인 자영업이 아니라면 감도 따고 녹차 잎도 따고 매실도 따고 노가다도 하고
공공근로도 하고 관련 분야가 있다면 일종의 아르바이트도 하고 닥치는 대로 돈을 수집해야 한다.
마을 사무장이나 환경 관련 단체에서의 일들도 가능할 것이다.
거주 공간이 있다는 전제에서 대략 월 오십만 원 정도 벌 수 있다면 한 목숨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곳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은 거의 소비 욕구가 평균 이하로 발달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저렴한 생존비용이 가능한 것이다.
가족 단위의 귀농귀촌이라면 ‘내려와서 찾아보자’ 하고 하방투쟁 하는 경우는 자제했으면 좋겠다.
내려와서 찾아봤자 별로 없다. 일과 돈은 서울에 많지 시골에 있겠는가. 물론 사람 일이란 것이 알 수 없는 장면이
있지만 지리산과 섬진강만 바라본다고 밥이 나올리는 만무하다. 통계를 보니 건강과 행복지수는 도시가 더 높았다.
인간극장이나 인쇄 매체, 블로그 또는 지리산닷컴을 보고 귀농귀촌을 결심한다면 낭패다.
독일로 간호사와 광부로 떠난 대학 졸업 한 우리 아버지 세대가 비행기 트랩을 오를 때의 마음가짐 같은 것,
그것을 가지고 시골로 향하면 무엇이건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에 비해 남성들이 뭔가 폼 나는 일을 해보려다가 제법 시간이 흘러버린 경우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획 병’이라고 하는데 시골에는 기획 인력은 별 필요 없다. 실행 인력이 요긴하다.
지리산 자락이라 아무래도 간혹 볼 수밖에 없다. 생각은 높고 몸이 천근인 사람들. 보기 좋지는 않다.







FAQ3 - 귀농을 원하는데 구례 땅 값은 어떤가요?
구례 땅 값은 졸라 비싸다. 강남 보다는 싸지만. 여하튼 귀농지로 구례는 적합하지 않다.
오미동을 기준으로 하자면 논 한 단지에 오천만 원 이상으로 생각하면 된다.
한 단지에 일백오십만 원 정도 수입이 가능할 것이다. 스무 단지 정도 하면 연봉 삼천만 원 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땅 값이 10억 정도 필요하다. 연봉 삼천만 원 보고 10억 투자하는 사람은 없고 그런 사람은 귀농하지 않는다.
그러면 과수 등을 중심으로 한 농장은 어떠한가? 그건 잘 모르겠다. 일단은 농사를 어떻게 짓는가 하는 기술력의
문제가 있고 어쩌면 그것 보다는 판매에 관한 대책이 더 큰 문제다. 삼천 평정도 감나무 밭을 가지고 있다면
육천만 원까지도 매출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엄청난 노력과 직거래 경로가 있다면.
평당 십만 원 이상 농지에서 귀농을 계획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FAQ4 - 유기농을 하고 싶은데 전망은?
1. 인생철학이 자연에 대한 반성을 기반으로 한 바른 먹거리 생산이라면 하시라.
2. 확실한 직거래 경로가 있다면 하시라.
3. 내 가족만 먹을 것이라면 하시라.
이외의 경우에는 하지 마시라. 시골사람들의 오랜 격언. “유기농이 사람 잡는다.”

FAQ5 - 시골에서 살고 싶은데 아내가 반대합니다
이혼을 하고 남자 혼자 내려오거나 그냥 서울에서 부부가 그대로 살면 된다.
내 말을 듣지 않고 내려오면 내려와서 이혼을 하게 된다.
이혼을 위한 전략으로 시골 행을 택한다면 그대로 진행해도 무방하다.

FAQ6 - 아내와 저는 시골이 좋은데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망설여집니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도시로 나가는 사람도 있고 아이들 교육 때문에 시골로 오는 사람도 있다.
동일한 문제로 제 각각의 해결책을 찾았으니 취향과 성향은 있으나 정답은 없을 것이다. 나라면?
내가 행복한 쪽으로 결정하겠다. 어차피 도시건 시골이건 아이들이 결정한 것은 아니니까.
미래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결정하지 못하겠다면 그냥 도시에서 사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당신의 생각과 판단은 항상 미래에의 불안감으로 인해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 경우는 현상 유지가 좋다. 익숙한 불안감이 새로운 불안감 보다는 안정적이다.







FAQ7 - 시골은 텃세가 심하다면서요?
텃세(명사):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뒤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하여 가지는 특권 의식. 또는 뒷사람을 업신여기는 행동.
‘심하다’는 표현이 문제지만 텃세는 당연히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것을 느끼는데 둔감한 편이다.
지나고 보니 ‘그런 것이 텃세였군’ 하고 느끼는 정도. 이사 가서 떡 돌리는 오랜 관행 역시 동물행동학적
관점에서는 꼬랑지를 살랑살랑 흔드는 행위다. 잘 지내보자는 굴러 온 돌의 의사표현이다. 대부분 큰 문제는 없다.
이런 질문의 이면에는 특화된 내용이 숨어 있다. ‘전라도 사람들’ 이라는 숨은 물음표가 있다.
나는 경상도 출신이다. 경상도 사람인 당신이 전라도에 살아보니 어떤가? 라는 질문이 완성형 문장이다.
살아보니 그런 지역색으로 인한 문제는 없다. 그런 문제를 생각하지도 염두에 두지도 않았기에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간혹 전라도 사람들과의 사석에서 ‘전라도것들이!’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어느 누구도
그 표현에 대해서 시비를 걸어오지는 않는다.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은 다르다. 서울 사람과 강원도 사람이
다른 것과 동일하다. 문화적, 자연지형적, 역사적 차이가 만들어 낸 당연한 다름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그 다름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세상에, 대한민국 전체가 사투리도 없고 성향도 동일하다면
여행을 하는 이유의 51%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장날이면 가는 국밥 집 엄니가 했다는 말은 들었다. 지리산닷컴 인턴사원이 들어서자,
“그 경상도 사람은 오늘 안 왔어.”
분명한 것은 지역색을 염두에 두고 나에게 질문을 하는 당신은 이곳에서 마음 편하게 살지 못할 것이다.
100% 확신할 수 있다. 다시 질문의 원형으로 돌아가서,
귀농귀촌자가 증가하면서 원래 살던 사람들 중 일부가 방어적인 형태의 거부감을 표현하는 경우는 있다.
이를 포괄적 텃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오히려 위기감의 또 다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다름에 대한 거부감이다.
본능적인 반응이다. 원래 마을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 중에 이런 경우가 많다. 세력에서 밀려나지 않겠다는
일종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반응이다. 동물의 왕국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시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해결책은? 없다.







FAQ8 - 문화적 차이는 어떻게 극복하나요?
녹차 농사를 짓는 농부와 녹차를 음미하는 소비자의 문화는 전혀 다르다.
녹차 잎 1kg을 오만 원에 팔았던 농부와 100g에 십만 원 하는 녹차를 구입하는 사람의 문화가 같을 수 없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이다. 문제는 그 다름에 대해 ‘다름을 서열화’하는 생각이 문제인 것이다.
교육 정도에 따른 이른바 지성이나 교양의 문제로 끌고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관점이나 태도에 대해서 나는 비교적 완강한 거부의사를 표현한다.
내가 생각하는 지성이나 교양의 기준은 인간성이다.
그것은 초등학교 1학년 바른생활에 나오는 기준만으로도 충분히 판가름할 수 있다.
큰 거짓과 큰 비리의 대부분은 충분하고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저지른다.
이제까지 본 바로는 ‘오만과 편견’이 원만하게 해결된 적은 없다.
“입이 아파서 더 이상 말 안한다.”
“하도 지랄들을 해싸니 더러워서…”
신뢰와 이해를 전제하지 않고 지적을 먼저 하는데 원만하게 해결될 수 없다.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
명백한데 친절할 이유는 없다. 문화적인 차이는 극복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차이를 인정하면 된다.
그래도 스트레스가 심하다면 성격을 바꿔라.

FAQ9 - 저는 시골은 너무 좋은데 벌레가 너무 싫어요
읍내 아파트에 사시오.

FAQ10 - 저는 액셀, 한글, 워드… 월 이백 이상 가능한 사무직이 있을까요?
없다.

FAQ11 - 과수원 같은데 일주일에 3일 정도 도와주고 방과 밥을 해결할 수 없나요?
쫌!







결심이 아닌 결정

결심보다는 결정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실무적이고 행정적으로 느껴진다.
결심은 마음의 정함이고 결정은 행동을 정하는 것이다. 물론 두 가지 모두 번복 가능하다.
여의치 않은데 번복하는 것이 큰 죄는 아니다. 때로는 그것이 현명함이기도 하다.
가볍게 하나의 로망으로 귀농귀촌을 설정하고 피곤한 일상을 마친 주말 밤에 귀농귀촌 카페를 살펴보거나
흙집공방에서 다른 이가 최근에 지은 집을 구경하며 부러움을 예열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 마음이 조금 더 예열된 밤에 나에게 메일을 보낼 필요는 없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결심이 아닌 결정이다. 결정하면 구체적인 질문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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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 http://www.jirisan.com/bbs/view.php?id=mountain&no=199

출처 : 행복한 집짓기
글쓴이 : 우드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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