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과 건강] 보온

2012. 2. 3. 13:41산행 자료, 안내

[등산과 건강] 보온

  • 글·한필석 부장 
  • 사진·정정현 부장·허재성 기자 
겨울철 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보온
안전과 건강 위해 따뜻한 채비와 따뜻한 식사가 필수
▲ 완벽한 복장은 안전하고 따뜻한 겨울 산행을 보장한다. 겨울 점봉산.

‘보온(保溫)’은 등산인들이 산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 중 하나다. 산행 채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산에 들어섰다가 눈비를 맞거나 골절 사고 등으로 체온이 떨어지면 당황하거나 심하면 저체온증세가 오면서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적 의미의 ‘체온(體溫)’이란 신체 내부의 온도를 말한다. 체온이 36.5℃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은 심장박동이나 근육의 움직임 등 신진대사와 관련된 세포 활동에서 지속적으로 열이 발산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를 땐 가볍게 바람 부는 산릉·산정에선 두텁게
서울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 김영철 교수(외과)는 “사람의 정상 체온은 36.5~37.5℃ 사이지만 신체 부위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폐는 호흡하느라 늘 찬 공기와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체온이 낮은 편이고, 간은 끊임없이 열을 생성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김 교수는 또한 “피부 온도는 정상 체온에 비해 6~8℃ 낮은데, 귓불은 28~30℃로 우리 몸에서 가장 낮다”며 “뜨거운 것을 만지면 순간적으로 손을 귓불에 갖다 대는 것은 그런 까닭이고, 우리 몸의 온도와 가장 유사하기 때문에 전자 체온계는 귀의 고막 온도를 재는 것”이라 말한다.


체온은 신체 부위나 연령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 온도를 유지하는 일은 우리 몸의 정상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병을 예방하거나 병의 악화를 예방하고 완화하는 데에 중요하다.


김 교수는 “적당한 운동은 체온저하 효과가 있지만 심한 운동은 체온을 상승시킨다”며 “산행 중 지나치게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경고한다.


김 교수는 “특히 덥고 갈증이 난다고 차가운 맹물을 마시면 뇌와 폐, 신장으로 이어지는 혈관을 수축시키고 그로 인해 피부와 근육으로 가는 피의 양도 줄어들기 때문에 쥐가 나거나 근육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는 “보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가 여름철엔 쥐가 나거나 저린 정도에서 끝나지만 겨울철엔 동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매주 토요일 근교 산을 찾는다는 김 교수는 “내 경우 특히 겨울 산에서는 정상이나 능선으로 향할 때에는 땀이 많이 나지 않도록 옷을 가볍게 입고, 바람이 많이 부는 능선이나 봉우리에 올라섰을 때에는 옷을 두텁게 껴입는다”며 “땀은 오히려 하산 길에 흘리는 게 건강이나 안전을 위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또한 “땀이 식을 때 마스크나 목폴라를 착용하면 보온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김 교수는 “입안의 습도가 떨어지면 체온이 1℃가량 낮아지고, 입안의 온도가 1℃ 올라가면 감기바이러스는 전멸한다”며 “마스크가 감기바이러스를 막아주리라는 생각은 배구네트로 파리를 잡겠다는 생각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마스크는 습도와 온도를 유지해 주는 효과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머리로 열이 많이 빠져나가는데, 어린아이일수록 머리가 신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기 때문에 머리를 따뜻하게 해줘야 하죠. 장갑은 동상예방을 위해 끼고 다니는 게 좋습니다. 특히 겨울 산행 때에는 속옷 한 벌 정도 예비로 가지고 다니다가 하산 후 갈아입는 게 건강을 위해서 좋아요.”


김 교수 말에 따르면 산행 중 골절상을 당했을 때는 다친 부위의 응급처치도 중요하지만 빨리 보온해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특히 골반 골절의 경우 심하면 많은 양의 혈관에서 빠져나와 장으로 가는 혈관으로 피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장이 썩기 직전까지 가는 황당한 일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한의학에서도 보온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일로 여기고 있다. 잠실한의원 김남주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보온이 안 되면 기(氣)가 많이 빠져나갑니다. 즉, 보온에 실패하면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 되면서 근육이 경직되죠. 반면 보온을 잘하면 혈액순환이 잘되어 피가 잘 전달되고 그 덕분에 근육에도 힘이 생기죠. 찬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가면 호흡기능이 떨어지지만, 몸을 따뜻하게 하면 오장육부의 기능이 상승하면서 원기와 소화기능, 배뇨기능이 향상됩니다.”


김 원장의 말에 의하면, 산행을 시작할 때 너무 빨리 걸으면 기운이 빨리 빠지고 심장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초반에 천천히 걷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보온은 관절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몸이 차면 혈액순환이 나빠지고 그로 인해 윤활 작용을 하는 관절액이 덜 생성돼 연골이 악화되고 주위 근육에 무리를 가져와 심하면 관절염까지 생기게 된다는 것.


김 원장은 또한 “산행을 마친 뒤에도 체온을 급격히 떨어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땀에 젖었거나 덥다고 옷을 훌렁 벗으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저항력이 떨어지기 때문. 


▲ 허술한 복장으로 추위에 떨며 쉬고 있는 등산인들. 겨울철 찬 음료수나 술은 체온 저하를 초래한다.

김남주 원장은 한방에서는 전통적으로 머리는 차고 발은 따뜻하게 한다는 ‘두한족온(頭汗足溫)’을 원칙으로 여자는 둔부, 아랫배, 윗배 순으로 보온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말한다. 김 원장은 “머리는 찬바람의 영향을 가장 잘 받기 때문에 겨울에는 꼭 모자를 쓰고 산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몸에서 땀이 나는데 밖으로 배출이 안 되면 체온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특히 겨울철에는 땀이 잘 흡수되면서 밖으로 잘 배출해 내는 기능성 의류를 입고 산행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또한 땀을 지나치게 흘리면 탈진되고, 염분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요. 스포츠의학자들도 땀이 촉촉이 배일 정도로 운동하는 게 가장 적당하다고 말하죠.”


김 원장은 차가운 약수나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면 급격한 체온 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에 몇 모금으로 나눠 마시라고 충고한다. 또한 산행 중 수시로 따뜻한 물이나 차를 마시는 게 좋지만 녹차처럼 이뇨작용이 강한 차는 많이 마시면 탈수현상을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산에서 너무 많이 먹는 것도 좋지 않으나 가볍고 많이 걷기 위해 행동식 위주로 먹다 보면 체온이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어요. 겨울철엔 보온병에 따뜻한 죽 종류나 장국 같은 것을 가져와 섭취하면 체온 유지에 큰 도움이 됩니다.”


김 원장은 몸이 차가우면 신체기능이 전체적으로 떨어져 감기몸살에 걸리거나 면역질환도 생길 수 있으며 말초신경까지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 되면서 코끝, 귓볼, 손가락, 발가락 같은 데에 동상이 올 염려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겨울철엔 특히 온천산행이 건강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보온에 실패했을 데 오는 가장 치명적인 증세는 저체온증. 김 원장과 김 교수는 “저체온증세가 나타날 때 신속히 응급조치를 하지 않으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저체온증 환자는 신속히 모든 환경 따뜻하게 해줘야
저체온증이란 체온이 35℃ 이하로 떨어졌을 때 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증상들을 말한다. 박태원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교수(응급처치)는 “저체온증은 일교차가 크거나, 평지와 온도차가 큰 산 정상이나 능선에 오를 때 발생하기 쉽다”며 “특히 급격한 기온 변화를 겪거나 갑작스런 바람이나 비, 눈까지 만날 경우 체감 온도는 더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체온이 내려가면 전신이 후들후들 떨리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근육의 움직임으로 열을 보충하려는 것이다. 초기에 혈압도 올라가고, 호흡도 가빠지고, 심장 박동도 빨라지는 것은 체온을 올리려는 몸부림이다. 그러다 체온이 더 떨어지면 신체 기관의 생리적 활력은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어 체온이 약 32℃ 이하로 떨어지면,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는 부정맥이 오고 정신을 잃는다. 결국 심장 박동이 멈추면서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희한한 것은 저체온증 사망자의 20~50%는 옷이 벗겨진 채 발견된다는 점. 이는 체온이 내려가는 과정에서 체온 조절을 관할하는 뇌의 해마 기능이 파괴돼 되레 덥다고 착각하는 현상 때문이다.


박태원 교수는 “저체온증 환자를 발견하면, 우선 담요로 몸을 데워 주고, 따뜻한 환경으로 신속히 옮기고, 따뜻한 공기를 불어넣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