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에서 하층민으로 전락하는 하우스푸어

2012. 9. 12. 20:01세상사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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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지영호 기자][[머니위크 커버]흔들리는 중산층/ 하우스푸어發 중산층 위기]

요즘 정치권의 주요 이슈 중 하나가 하우스푸어 구제방안이다. 집 가진 사람들의 빚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진 것이다. 이들을 구제하지 않으면 국가 경제의 근간인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다소 위협적인 의견이 나오면서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하우스푸어 라는 난제 풀이에 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중산층이 하우스푸어로 전락했다는 말이 사실일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정확하게 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하우스푸어 중 상당수가 중산층이라는 점에서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인지하고 있다.

일례로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하우스푸어의 구조적 특성’ 자료를 보면 중산층인 3~4분위 가구에서 하우스푸어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 통계청의 ‘2010 가계금융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활용한 추산인데 상위 20~80%의 소득을 올리는 가구에 하우스푸어의 약 72.5%가 몰려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 하우스푸어의 가구수에 대한 일반적인 판단은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협의의 하우스푸어 108만4000가구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연구원이 판단하는 하우스푸어 기준은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주택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았고 ▲원리금 상환으로 생계에 부담을 느끼면서 ▲실제 가계 지줄을 줄이는 가구다. 여기에 다주택자를 제외하고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비중이 최소 10% 이상인 가구의 숫자가 100만이 넘는다는 것이다. 이중 전체가구를 소득수준에 따라 균등하게 5등분 했을 때 2~4분위에 해당하는 중산층 가구의 수는 78만6000명이다.

사진_뉴스1 손형주 기자

◆집 가진 중산층이 왜 가난뱅이가 됐나

부동산 경기가 호황을 누리던 2000년대 중반까지 집 가진 이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한달 봉급보다 많은 돈이 집값으로 뛰는 현상이 벌어지자 너도나도 주택 구입에 열을 올렸다. 여기에 자산이 충분치 않음에도 금융기관의 후한 인심에 혹한 중산층이 무리한 차입금을 등에 업고 아파트 계약에 나섰다. 계산은 3년만 이자내고 원리금 상환 시 환매를 통해 차익을 거두겠다는 계산이었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낙관론이 팽배해 레버리지를 이용해 자산 증식을 꾀하려는 심리가 우세하다.

문제는 영원히 오를 것만 같았던 부동산 가격이 정체되면서다. 힘겹게 이자를 부담하면서 시세 차익을 볼 날만 기다렸던 이들에게 원리금 상환일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의 심정으로 바뀌었다. 주택가격이 오히려 떨어지면서 물가상승률과 기회비용을 차치하더라도 이자 부담금과 원금이 산처럼 쌓여있는 현실에 부딪히게 됐다.

여건은 보다 악화되는 추세다. 약간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집을 팔고 세입자 신세로 돌아가려 해도 매수세가 없다. 당장 갚아야 하는 원금이 있는 만큼 무턱대고 집값을 낮춰 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곳저곳에 돈을 빌리며 시장이 살아나기만 기다리지만 부채만 쌓일 뿐이다.

어렵게 내 집 마련을 한 가구일수록 최후까지 주택처분을 미룬다는 것이 부동산업계의 정설이다. 이런 사례들이 현재 부동산 경매시장에서 늘어나고 있는 하우스푸어 매물이다. 최근 무너진 서민의 꿈은 대개 이런 스토리로 흐르고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팀장은 “하우스푸어 문제는 집이 삶의 공간이 아니라 투자 자산화 되면서 빚어진 현상”이라며 “투자 자산의 목적은 수익률을 높이는데 있고 낙관적인 시장에서 레버리지를 높이는 것이 당연하다. 빚은 잘 사용하면 언덕이 되고 담요가 되지만 적정하게 쓰지 않으면 빚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현재 주택시장에 대해 “자본시장에 투기적 거품이 꺼지면서 과도한 대출로 인해 자산을 늘렸던 이들이 우량자산마저 처분해야 하는 시기인 민스키 모먼트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_뉴스1 양동욱 기자

◆부의 불균형 가속화 우려... 해결책은 미궁 속

미국의 한 연구소는 자국의 소득 구조를 피라미드에서 더욱 발전해 두바이의 초고층 빌딩인 부르즈칼리파에 비유해 화제가 됐다. 고소득자의 소득격차가 너무 많이 나서 상층부로 갈수록 폭이 좁고 높은 철탑 형태의 소득 구조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이 비유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가 최상층에 산다면 미 대선 후보중 역대 세 번째 부자인 미트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는 최하층에 살게 된다는 것이다. 고소득자 사이에서 조차 소득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을 강조한 사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99%와 1%의 싸움은 잊고 1%와 0.001%의 대결에 주목하라”며 이 차트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 같은 시각에서 자유롭지 않다. 소득 격차로 따지자면 점차 초고층빌딩 형태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물론 중산층은 지상층의 수십배의 연면적을 갖춘 지하공간에 위치해 있다.

문제는 하우스푸어가 이 같은 형태의 자산분배구조를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하우스푸어의 파산은 결국 집값 하락과 더불어 더 많은 하우스푸어를 양산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하우스푸어가 늘면 늘수록 중산층의 두께는 얇아지게 마련이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해야 할 중산층이 하층민으로 밀려나면서 자산분배구조는 점차 다이아몬드형에서 피라미드형으로, 다시 피라미드형에서 부르즈칼리파형으로 바뀌게 된다.

부의 불균형과 양극화 문제가 대선을 앞두고 핫이슈로 떠오르면서 정치권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하우스푸어 대책 마련으로 옮아가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공적펀드를 조성해 하우스푸어의 주택을 구입하고 이를 다시 하우스푸어에게 재임대하는 방식을 두고 조율 중이다. 기업의 세일 앤 리스백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현재 주택매입의 주체는 캠코나 LH공사, 주택금융공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은 뜨겁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들여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경우 이들보다 형편이 어려운 무주택 서민과의 형평성 문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무차별적으로 하우스푸어를 구제한다면 정부는 개인의 투기행위를 지원한고 투기행위자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 시킨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지원 규모와 대상, 재원마련도 불투명하다. 새누리당은 모든 금액이 공적자금으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박 수석팀장은 “거시경제의 안정성이나 부동산 가격 연착륙 등 정부의 절박성은 이해하지만 하우스푸어의 빚 탕감이 이뤄지면 앞으로 개인 투자자가 적극적으로 빚을 갚으려고 하겠나”면서 “국민들의 상식과 부합하는 수준에서 지원책이 나와야지 너무 앞서가면 후퇴하기 마련”이라고 평가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지영호기자 tellme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