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편한 '어르신'이 늘어난다.

2014. 6. 21. 12:30세상사는 얘기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 노후대비는 더 이상 베이비부머나 중장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하는 모든 세대의 과제다.

생애주기에서 노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면서 은퇴 후의 삶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노후에 삶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주거의 선택은 행복한 노후생활의 기초가 된다. 

이에 <머니위크>는 2014 연중기획시리즈 'I♥100세'를 통해 '할머니·할아버지가 멋있게 사는 집'을 다루고자 한다.

100세 시대를 맞아 전원주택, 실버타운, 아파트 등 노후주거 형태를 살펴봄으로써 자신에게 맞는 주거공간을 꾸미는 데 도움을 주고,

노년에 맞는 주택 인테리어와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선택하면 좋은 지역, 주택으로 할 수 있는 재테크 방법 등을 알아봤다.

 
"김씨, 금요일에 시간 괜찮아? 경기도 광주 퇴촌에서 토마토축제가 열린대. 같이 바람쐬러 가자고.

윗층에 사는 박씨랑 103동 이씨도 간다는데, 어때?"

지난 10일 경기도 부천 A아파트단지 내 상가 안에 있는 '꿈마을분식'을 찾았다.

오전 9시, 이른 시간임에도 분식집은 생기가 넘쳤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분식집을 운영 중인 이옥녀씨(75)다.

곱게 화장하고 손목에는 금색 팔찌로 포인트를 줬다. 분홍색 꽃 장식 슬리퍼도 눈에 띈다.

이씨는 소문난 멋쟁이 할머니다.

 

5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분식집을 운영하는데 힘이 들 법도 하건만 이씨는 결코 힘들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씨에게 분식집은 '일터'가 아닌 '아지트'였기 때문.

"돈을 벌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힘들면 하루 쉬고 슬슬 마실 가는 기분으로 장사하면서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얼마나 좋은데요."

이씨는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가게를 운영하는 게 건강에도 좋다고 말한다. 사실 이씨는 75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다. 오전 7시 반이면 어김없이 가게 문을 열고 상가 내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도 직접 한다.

그런데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오후에 3시간 정도씩 종종 이씨가 종적을 감추는 것. "아 그거요? 춤추러 가는 거예요." 이씨가 돌연 자취를 감춘 이유를 밝혔다. 이씨는 일주일에 두번씩 스포츠댄스를 배운다. 단지 인근에 위치한 스포츠댄스학원에서 2시간가량 운동하면서 땀 흘리고 나면 스트레스로 뭉쳤던 근육도 풀려 몸이 가뿐해진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는 주말에도 바쁘다. 먼저 토요일에는 옆동의 친구집에서 지인들과 모여 종종 고스톱을 친다. 고스톱에 참여하는 멤버의 평균연령은 70세가 훌쩍 넘는다. 도박보다는 그야말로 '치매예방용' 고스톱이다. "85세 언니가 있는데 그렇게 고스톱을 좋아하고 잘쳐요."

일요일에는 보통 교회에서 하루를 보내는 이씨지만 서울 근교에서 축제가 열리면 어김없이 찾아간다. 아파트단지 내 친구들과 함께 축제를 구경하며 예쁜(?) 포즈로 기념사진 찍는 게 취미라고. 그는 다음주 주말(20일)에도 윗층의 박씨, 103동에 사는 이씨와 함께 '퇴촌 토마토축제'에 다녀올 계획이다.

 

 

◆"전원주택? 아파트가 더 좋아요!"

"전원주택이요? 관리하기 힘들잖아요. 실버타운은 비싸기만 하고 답답할 것 같아요. 전 그냥 아파트가 좋아요."

전원주택이나 실버타운보다 아파트가 좋다는 이씨는 현재 부천 중동에 위치한 한 영구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39㎡(12평형)로 방이 2개이고 전체 15층 건물 중 8층에 산다. 아파트 월세와 관리비를 합하면 16만원 정도.

노인연금 9만원으로는 조금 부족하지만 큰아들이 보내주는 용돈으로 나머지 주거비용을 충당하고,

남는 돈은 가게 월세와 관리비 등에 보탠다.

"사실 가장 지출이 큰 건 머리하는 거예요. 두달에 한번씩 파마와 염색을 하는데 3만5000원씩 나가요."

그래도 혼자 살기에 큰 어려움이 없단다.

사실 용산이 고향인 이씨는 지금까지 도시를 떠나본 적이 없는 전형적인 '도시 실버'다. 그렇다보니 아파트생활도 익숙하다.

전문가들은 최근 이씨처럼 전원주택이나 실버타운보다 아파트에 살기를 원하는 실버세대가 증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아파트생활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파트공화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에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는 1964년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들어선 마포아파트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다. 지금의 실버세대가 아파트에 익숙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제 실버세대도 넓은 마당과 텃밭이 있는 전원주택보다는 수리나 수선이 적어 관리가 쉽고 난방이 잘 되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잘 갖춰진 주변의 생활인프라와 편의시설도 아파트가 인기를 끄는 데 한몫 한다. 특히 도시 곳곳으로 촘촘히 연결된 지하철과 버스노선을 따라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점은 실버세대에게 큰 행복이다.

이와 관련 이씨는 "우리 아파트단지 안에도 노인정이 있지만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며 "지하철을 타고 조금만 가면 갈 만한 곳이 많은데 굳이 답답한 노인정 안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아파트도 '업그레이드' 필요

도시 속 아파트에서 젊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니 젊게 살 수 있는 것 같다며 미소 짓는 이씨.

아파트는 더 이상 젊은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실버세대와 젊은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주거유형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실버세대의 가구에 그들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방 문턱을 없애주거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세면대를 달아주는 등

작은 배려만 하면 된다. 화장실 좌변기 옆으로 지지대를 설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관절이 약한 실버세대는 좌변기에 앉았다가 일어서면서 뇌출혈로 쓰러지거나 미끄러지면서 다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거동이 불편한 실버세대를 위해 화재감지기나 응급호출버튼 등을 설치하는 것도 필수다.

이 같은 실버세대를 위한 설계는 최근 지어진 신축아파트의 경우 이미 적용된 부분이 많다.

따라서 기존 아파트와 실버세대 비율이 높은 임대아파트 등으로 이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윤상필 도시환경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이제 전원주택이나 실버타운에 살지 못하는 실버세대가 차선책으로 아파트에 사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아파트를 선택한 실버세대가 젊은세대와 공존하면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발벗고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