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7. 06:12ㆍ세상사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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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한 나는 지각이나 무단결근 한 번 없이, 아주 열심히 몸이 부서져라 회사를 다녔다. 그런데 6년여의 세월이 흐른 2011년 12월, 내 자신을 돌아보니 각종 스트레스로 인해 비정상이 돼버린 '몸뚱이'와 찬란한 '빚'만 남았다.
응? 몸뚱인 그렇다 치고, 그동안 열심히 일을 했으니, 차곡차곡 모은 아니 쌓인 목돈이 내 손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런 나의 모습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난 지난 10월에 '결혼'이란 걸 했으니까.
지난 3월 결혼을 결심한 뒤 상견례-집 구하기-혼수-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예단-함-예식 등등(중간에 있는 20가지 과정은 생략)을 해치웠다. 결혼이 이렇게 복잡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다시 생각해 봤을 수도 있다.
사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뭔가를 계속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나처럼 '결정장애'를 가진 신부나 신랑이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정'보다 나를 그리고,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돈님'이다.
6년간 쉼 없이 일한 내 주머니를 한순간에 털어간 '결혼'
여기까지 읽은 이들 중에 '돈을 많이 못 모은 거 아냐?'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시겠다. 하지만, 그런 평가를 듣기엔 너무 억울하다. 나는 대학에 처음 발을 디딘 1999년 3월부터 2003년까지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왔고, 두 번의 이직을 통해 지금 회사에 자리를 잡았다. 나름 사회생활 공력이 길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최소한 '돈' 때문에(넉넉하진 않아도) 이렇게 허덕이진 말아야 정상 아닌가?
대학등록금은 부모님으로부터 지원받았고, 내 용돈은 '알바'를 해서 썼다. 1730원 이게 내 첫 시급이었다. 대부분 새벽 6시까지 출근해서 6시간~8시간동안 주 4~6일 근무하고 학교를 다녔다(지금 생각해도 스스로 대견하다). 그 시절엔 그렇게 한 달간 열심히 일하면 30만 원 남짓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러나 차비(당시 버스비는 500원)와 식대 등을 충당하기에도 버거운 돈이었다. 그러다 2001년인가 학자금대출을 받게 되었는데, 졸업하던 2003년까지 매달 학자금 대출 이자를 냈고, 취업을 하고 나서야 원금을 갚을 수 있었다.
그나마 나는 운이 좋아 학자금대출을 딱 1번만 받았지만, 최근 4~5년 내에 졸업한 주변 지인들 중엔 매 학기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냈다고 한다. 그들은 졸업 후, 실제 신용불량자가 되어 취업 때 신원보증서와 보증인을 내세워야 했다. 아직 사회에 뛰어들기도 전에 엄청난 빚더미를 안고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대단한 논개 나셨다.
뭐 어찌됐든 취업을 해 학자금대출을 다 갚고 나면, 얼추 결혼할 나이가 된다. 근데, 서울 시내 보통 이하의 전세금이 1억 원이 넘는다. 이제 겨우, 간신히 학자금 다 갚고, 살만해져 여유로운 결혼생활을 꿈꾸려고 하니, 전세가 1억? 장난하냐!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지난 6월, 결혼준비로 분주했던 나에게도 시련은 닥쳤다. 신혼집 얻으러 다녔던 그 한 달 동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머리카락이 빠진 것은 물론, 불면증에도 시달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총성 없는 전쟁 같았다. '남자가 집은 해오는 거 아니냐'며, 그 큰 부담을 남편에게 떠넘기기엔 이 짐은 실로 엄청나다.
예비 신혼부부에게 필수조건이 돼버린 '대출'
우리나라 남자들은 사회구조상 어쩔 수 없이 여자보다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한다. 그런데 취업해 2~3년간 학자금을 갚고 나니, 여자친구가 결혼하려면 최소 1억 원은 있어야 한단다. 응? 집에 가서 '아빠 나 집 사게, 아니 전세 얻게 한 1억 5천만 줘!" 그럼 아빠가 '옜다, 혹시 모자랄지도 모르니 2억을 주마!' 이러고 주냔 말이다.
갑자기 남자들이 불쌍하다. 나를 포함해 올해 결혼한 주변 지인 5쌍은 모두 연애결혼을 했으며, 모두 신혼집(당연히 전세)을 얻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시댁에서 어느 정도 도움을 받고, 서로 모아둔 목돈을 전세 값에 보태고, 그래도 모자라는 돈은 은행에서(적게는 5000만 원에서 최대 8000만 원까지) 대출받았다. 대신 예단 등을 생략한 커플도 있었고, 혼수를 카드로 사서 예식을 치르고 난 뒤 생긴 돈으로 갚은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나름대로의 돌파구를 찾았다.
그나마 이런 사례는 연애결혼이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결혼준비를 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던, 회원수가 160만 명이 넘는 이 인터넷카페를 봐도, 대출은 이제 당연한 얘기가 된 듯하다. 이건 여자와 남자를 떠나 아무리 생각을 해도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부모님이 당장 현금 1억 원 이상이 없다면,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을 팔아 내 집을 얻겠다는 계산밖에 안 나온다.
그러나 차마 그렇게까지 하면서 결혼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래서 결국 이런 결심을 한다. "그래, 몇 년 동안 맞벌이 열심히 하면 되지. 저축하는 셈치고 한 사람 월급으로 대출금을 갚으면서 2년만 고생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결혼을 하는 거다.
뭐, 집 말고도 혼수, 스드메, 예식, 신혼여행에도 목돈이 든다. 하지만 열심히 발품 팔고, 열심히 검색하면 좀 더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낄 수 있고, 조절이 가능하다. 욕심을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신부님~ 일생에 단 한 번뿐인데, 나중에 후회하세요~" 이 말에 넘어가지만 않으면 된다. 그런데 집은 좀 다르다. 단위부터 생소하며(억!이라니, 심장 떨린다), 서울 시내를 고수해야 한다면 협상할 수 있는 범위가 더 좁아진다. 만약 돈 때문에 원하던 곳이 아닌 곳에 자리를 잡는다면, 출퇴근 거리를 비롯한 많은 주변 환경으로 인해 삶 전체가 흔들릴 것이다.
결혼한 지 두 달, 벌써 2년 뒤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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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결혼해서 살 신혼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단 2주만에 '같은 집'의 전세가 1000만 원이나 오르는 걸 내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1000만 원은 내 4개월 치 월급이며, 한 달에 100만 원씩 10개월을 저금해야 만질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2주였다. 딱 14일.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하루 하루 전세금액은 올랐고, 당초 '2천만 원 이상은 대출받지 않겠다'는 나와 남편의 결심도 결국 무너졌다. 우리는 대출금을 2천만 원에서 5천만 원으로 늘려 회사에서 가까운 20평대 아파트를 얻었다. 그렇게 집을 구한 뒤 한 달간 나를 괴롭혔던 엄청난 스트레스와 탈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목표는 높게 세우랬다고, 2년 안에 5천만 원을 갚기로 결심을 하고 나니, 다시 2년 뒤가 걱정이다. 다 갚지도 못한 상황에서 집주인이 전세 값을 올려달라고 할까봐, 벌써부터 심장이 졸깃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타들어가는 이런 내 속을 모르나보다. 남편의 말대로 결혼을 하고 나니, 모두다 애를 만들라며, 권유 아닌 권유를 해대고 있다. 나라에서는 캠페인까지 벌인다. 물론, 나도 상황만 이렇지 않다면 그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답을 해줄 용의는 있다.
그러나, 현재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안정성도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신-출산-육아는 그야말로 사치다. 임신할까봐 전전긍긍이다. 뭐, 내가 모자라 복지가 끝내주는 대기업에서 근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 회사에서는 3개월만 자리를 비워도, '책상을 빼지는 않았을까'란 걱정을 해야 한다.
결혼하기 어려운 세상...로또를 사야 하나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일까. 내 주변은 요즘 싱글이 대세다. 하지만 결혼에 대해 아예 생각이 없거나, 철저한 독신주의자는 아직 못 만났다. 하지만 결혼하기 정말 어려운 세상인 건 확실하다. 평범한 직장인이 서울에서 혼자 벌어 3~4명의 가족이 살 수 있을 정도의 집을 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부모님의 도움은 땡큐고, 맞벌이는 필수고, 대출은 불가항력이다.
결혼을 하면, 남편과 깨 볶으며 핑크빛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세우면서 살고 싶었다. 물론 번듯한 20평대 깨끗한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긴 하지만, 매일 눈을 희번덕거리며 어떤 지출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2년 뒤(전세 계약기간 종료)를 걱정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또 필요한 건 뭐든지 시댁과 친정에서 공수하며 결혼 이후 옷 한 벌을 안 사 입었다.
결혼한 뒤 행복한 것은 사실이나, 가슴이 퍽퍽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이런 모습들은 한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2007년 대선에 출마했던 한 후보가 내놨던 공약처럼 신혼부부에게 1억 원씩 주지는 못할망정, 천정부지로 치솟은 전세 값이나 제발 좀 잡아줬으면 좋겠다.
요즘은 '아이 낳고도 계속 전세 전전하며 대출금 갚고 있는 건 아니겠지?'란 걱정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아! 이럴 때가 아니다. 로또를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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