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갑에 ‘검게 변한 폐’ 사진 도입 미뤄지는 이유?

2012. 3. 19. 12:50건강*웰빙

'건강이냐 산업이냐' 놓고 보건복지부-기획재정부 대립

18대 국회 발의후 제대로된 논의도 없이 폐기될 운명

금연효과 좋은데…도입 지연되며 마케팅은 날로 발달

가로 5.2㎝ 세로 8.6㎝의 담뱃갑에 '검게 변한 폐' 등 흡연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진의 부착 여부를 놓고 7년째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금연단체와 담배회사간 신경전이 치열한 가운데,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보건복지부가 국민 건강 측면에서 도입에 적극적인 반면, 기획재정부는 산업적 효과를 들어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 '담배는 효자산업' 재정부의 반대

복지부는 해마다 경고그림 도입을 주요 업무과제로 선정하고,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지난 2010년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가 펴낸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법률안 검토보고'를 보면 복지부는 "경고그림을 담뱃갑 포장지에 도입하게 되면 흡연으로 인한 폐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며 "국민의 건강증진 개선 및 흡연예방의 정책적 효과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것으로 보여 찬성한다"고 밝혔다. 올해는 의원 입법 대신 정부 입법을 통해서라도 관철시킬 태세다.

반면 재정부는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에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수출 산업으로서 효과가 크고, 세금도 많이 걷히는 분야여서 매출 축소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재정부 관계자는 "담배는 연간 수출액이 5억달러에 이르고, 한해 세금도 7조원 가까이 걷힌다"며 "건강 쪽 측면뿐 아니라 산업적 측면도 함께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500원짜리 담배 1갑에는 소비세·폐기물 부담금 등 세목에 1500원 남짓의 세금이 따라 붙는다. 2010년 국회 복지위 검토보고에도, 재정부는 "경고그림 도입으로 인한 흡연율 감소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부족하고, 경고그림을 도입한 국가도 대부분 도입 초기에 있어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분석을 추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애매모호한 답변에, 속내를 더 들어봤다.

■ 국회, 업계 로비에 넘어갔나?

국내에서 경고그림 도입이 논의된 것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담배의 폐해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던 때다. 2005년에는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흡연 규제 협약인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 가입했다. 협약은 경고 문구 및 경고 그림 등 각종 규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도 나섰다. 2008년 전현희 민주통합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발의했다. 하지만 18대 국회 4년동안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하고 올해 5월 말 18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될 운명을 맞았다. 전현희 의원실의 이영탁 보좌관은 "위원회에 상정되는 데만 1년 이상 걸렸고, 그 뒤로도 2년여 동안 한번도 논의되지 못했다"며 "담배회사의 로비가 심했던 탓"이라고 말했다.

담배 회사는 로비 사실을 부인하지만, 지난해말 2008년 국내 담배회사 케이티앤지(KT&G)가 당시 국회의원 여럿에게 불법적인 '쪼개기 후원금'을 낸 혐의가 드러난 바 있다.

국내 담배회사 4곳의 입장을 대변하는 담배협회 임형묵 사무국장은 "흡연 폐해를 알리는 수단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굳이 혐오감을 불러오는 사진을 써야 하느냐"며 "회원사 사이에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모두 경고그림 도입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 2001년 시작, 세계 41개국 시행중

세계보건기구 자료를 보면, 담뱃갑 경고그림은 지난 2001년 캐나다에서 처음 도입돼 2011년 현재 세계 41개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캐나다·브라질·영국·이집트·스위스 등과 함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싱가포르·타이·오스트레일리아·홍콩 등이 도입했다. 세계 최대 담배 시장인 미국도 최근 경고그림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경고그림을 처음 도입한 캐나다에서는 2000년 24%였던 흡연율이 경고그림 도입 직후인 2001년 22%로 줄었고, 2010년에는 17%까지 떨어졌다. 브라질에서도 2000년 31.0%였던 흡연율이 경고그림을 도입한 2003년에는 22.4%로 줄었다. 지난해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한 국내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7%가 "경고문구보다 경고그림이 더 경고 효과가 크다"고 답했다.

경고그림 도입이 지연되는 사이 국내 담뱃갑 디자인은 나날이 아름다워지고 있다. 남성 패션잡지와 공동 디자인한 한정판 상품을 내놓는가 하면, 소비자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담뱃갑에 싣기도 한다. 담배회사는 이로 인해 이미지 개선과 판매 증가 효과를 보고 있다고 밝힌다. 케이티앤지 관계자는 "젊은 디자인으로 대학생 등 젊은 층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며 "지난해에 디스플러스의 경우 디자인을 혁신해 20% 가량 매출액이 늘었다"고 밝혔다. 최현준 기자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