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13. 19:26ㆍ세상사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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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 조현주 기자
- 입력 2011.11.09 16:57
- 2011.11.09 16:57
수정 - 시사저널
빛도 들지 않는 낡은 집에서 거의 40년의 시간을 투쟁하듯 살아온
손부녀 할머니(71)의 기구한 삶이 그러했다.
지난 10월25일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손할머니의 댁에 찾아가 보았다.
어두운 방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손할머니는 방의 전등도 켜지 않은 채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 추운 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어딘가 급히 전화를 걸었다.
이내 할머니의 큰딸 장 아무개씨(50)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 시사저널 > 취재진의 방문에 대해 장씨는 "이제 더 이야기할 것이 뭐 있나.
지금 소송까지 진행 중인 마당에!"라며 손사래를 쳤다.
차갑고 어두운 방 안에서 손할머니 가족의 몸과 마음은 모두 얼어붙어 있었다.
화천경찰서 부지 안에 있는 손부녀 할머니의 집. 보수 공사조차 하지 못하게 해 곳곳이 낡아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
손할머니의 남편인 고 장창기씨(1990년 사망)는 일본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엘리트였고,
화천 지역에서 상당한 토지를 소유한 유지였다. 그는 지난 1974년 당시 현 시가로 50억원대에
이르는 토지를 국가에 기부했다. 장씨가 기부한 토지의 규모는 자신의 집터(1천8㎡)를 비롯해
경찰서 부지 5천1백63㎡, 군청부지 1천3백22여 ㎡ 등 총 7천4백93㎡나 된다.
이에 화천경찰서는 장씨 가족에게 옛 집터에 90여 ㎡의 주택을 지어주고, 집터와 주택은
곧 장씨 가족에게 등기 이전해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장씨 일가가 부지를 기부(증여)한 증여 증서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잠자다 집 헐리는 봉변당하기도
고 장창기 할아버지와 가족들이 옛집에서 다정한 포즈로 찍은 사진. |
장씨 일가는 오히려 국가 부지에 '침범'해 살고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손할머니
가족이 겪었던 고통은 말로 다 풀기 어려운 것이었다. 손할머니의 딸 장씨는 "이제 말하려니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헛웃음이 나는 일이 많았다"라며 그동안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장씨는 "그날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밤중에 우리 집 한쪽이 포클레인으로 헐리는
봉변을 당한 적도 있었다. 당시 잠을 자다가 그 포클레인 삽에 들려서 깼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집의 한쪽을 헌 자리에는 건강보험공단이 들어섰다. 당시 경찰서에서 이 건물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1천만원을 줄 테니까 나가라는 말을 했다. 우리 가족은 버티며 집을 지켰고, 결국 어머니가 지금 무너지지 않은 나머지 공간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것이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이미 낡을 대로 낡아버린 집을 고칠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손할머니와 가족은 집을 개·보수해 살게 해달라고 화천경찰서에 수차례 요구해왔지만,
경찰서측에서는 국가 재산이므로 개·보수는 불가능하다며 거절했다. 냄새가 너무 심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 화장실로 보수하게 해달라는 요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가 오면 지붕에서 물이 새는 통에 빗물을 막을 수 있게 빗물막이를 설치하려고 했지만,
이러한 요구도 거절당하고 말았다. 장씨는 "그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요구였겠지만
우리에게는 절실한 문제였다. 결국 허가를 받지 못한 채 주위의 도움으로 수세식 화장실을
집 안에 들였다. 또 한밤중에 몰래 지붕 처마 밑에 빗물막이를 설치해야만 했다"라며 설움을
토해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전직 경찰관들로 구성된 법정 단체인 대한민국재향경우회
화천군지회는 1980년대 중반부터 손할머니의 주택 가운데 일부분을 '국가의 재산'이라며
사무실로 사용해왔다. 때문에 할머니는 20여 년간 자신의 집 90여 ㎡ 가운데 절반 이상을
경우회 사무실로 내어주고 남은 30여 ㎡ 남짓한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다. 할머니는 경우회
사무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기 및 수도 사용 요금을 20여 년간 대신 납부하기까지 했다.
손할머니는 지난 1990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 급격하게 살림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2003년 여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로 내려앉고 말았다. 할머니는 매달 30만원 정도 되는 생활비로 생계를 잇느라 밤낮으로 전등을 켜지 않고
어둠 속에 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했다.
뇌졸중으로 손할머니의 거동이 불편해진 이후 어려움은 더욱 커졌다. 장씨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그동안 수모를 많이 겪었다. 집 앞마당에 고추를 심어 따먹는 것이 낙이었는데 경찰서측에서는 이 앞마당을 주차장으로 쓰겠다고 나섰다. 정성껏 일군 고추밭에 그대로 차들이 들어섰다"라며 "집 문 바로 앞의 빼곡한 차들 때문에 어머니께서 집 밖에 나가려다가 넘어져 얼굴을 크게
다친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손할머니와 가족은 사는 데 급급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집을 고칠 수 있게 해달라'라는 '사소한 요구'였지만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손할머니와
가족은 결국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것이었다. 20여 년 전
소송이라도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변호사를 여럿 찾아가 보았지만 모두 '어렵다'는 답변과 함께
거절했다고 한다. 장씨는 "오죽하면 우리가 집터를 다시 사겠다는 제안까지 했겠나.
이것도 안 된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손할머니 가족은 긴 기다림 끝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지난 3월 손할머니가 힘겹게 살아가는 사연이 인터넷 매체에 올라 화제가 된 이후,
국가권익위원회에서 직접 화천에 찾아와 현지 조사를 벌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장씨가
현 화천경찰서 인근 부지를 기부한 사실은 확인되었다. 그러나 화천서가 주택을 지어 등기
이전을 해주기로 했다는 약속을 입증할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손할머니와 가족은 영산조용기나눔재단의 무료 법률 지원을 받아 지난 4월19일 화천경찰서와
화천군청을 상대로 첫 소송을 냈다.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측에서는 "현재 소유권 보존
등기 말소와 관련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아무리 기부를 한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살고 있는
집까지 기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아마 국가의 요구에 의해 거의 '반강제적'으로 땅을
제공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장씨가 새집으로 이사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땅을 내어주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변호사측은 "과거 장창기씨가 자신의 부지와 집터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부분은 사실이나,
이후 조건부 기부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가 없다. 손할머니가 계속 집에 살고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조건부 기부의 증거이다. 때문에 부득이 손할머니 가족이 예전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었으니, 국가의 소유권 보존 등기를 말소하게 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소송 제기하자 뒤늦게 생색 내기식 제안해와
지난 10월25일 손부녀 할머니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
손할머니와 가족이 소송까지 걸게 되자 화천경찰서와 화천군청은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지난 6월29일 화천군청과 화천경찰서는 손할머니가 무상 임대주택 제공 요청서를 제출하면
지원 절차를 진행하고, 6년의 임대 기간이 만료된 이후에도 지원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손할머니의 처지는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 이에 대해 화천군청
관계자는 "무상 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손할머니측에서 거절했다"라고
해명했다.
손할머니와 가족들은 화천서와 군청이 소송이 진행된 이후에 뒤늦게 수습에 나선 것에 대해
분노마저 느끼고 있었다. 장씨는 "애초에 우리는 소송을 진행하는 순간 어떤 지원도 받지
않겠다고 밝혔었다. 우리와의 협의 없이 제안서를 발표하고 오히려 '다 해줬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동안 우리가 수차례 요구했을 때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던
이들이다"라고 말했다.
손할머니의 마지막 바람은 그저 '자신의 집에서 더 편히 사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앞으로
계속 쪽방 신세를 지더라도 소송을 포기하지는 않을 생각이라고 한다. 장씨는 "이제 와서 돈을
바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어떤 제안이 오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진행 중인 소송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조현주 기자 / cho@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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