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둘레길] 흘러가는 구름따라 설악산 자락을 걷다.

2012. 10. 12. 07:52산행 자료, 안내

설악동 야영장 ~ 장재터 ~ 상복리 ~ 회룡초등학교

general_image

↑ 멀리 바다가 보이는 황금들판을 지나고 있다.


최근 국립공원 및 지방자치단체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둘레길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제주 올레길, 북한산 둘레길, 대청호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변산 마실길,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강릉 바우길 등 곳곳에 걷기구간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산에도, 들에도, 강가에도, 바닷가에도 걸을 수 있는 곳은 모두 코스가 될 수 있으니, 둘레길은 새로 만드는 길이 아닌 이미 있던 길들의 재구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높은 산을 향한 오름이 아닌, 옆동네 마실 떠나듯 설렁설렁 걸어가는 둘레길은 그 문턱이 낮아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막힌 혈관이 뚫리듯 동과 서, 남과 북이 연결되어 삼천리 방방곡곡 구석구석까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는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리다.

전국의 등산객들은 앞을 다투어 설악산을 찾게 되지만, 편히 갈 수 있는 동네 뒷동산이 아니기에 산을 오르기 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만 한다. 설악산을 조망 하면서 가벼운 걷기를 원하는사람들이 있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전국적인 둘레길 열풍에서 빗겨간 듯, 설악산은 아직까지 둘레길 조성계획이 없다. 현재 지정된 공식 둘레길은 없지만, KTC(Korean Trail Course)에서 만든 미발표 코스가 있다기에 자료를 받아 찾아가 보았다.

general_image

↑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기분으로 걷는 매력이 있는 설악산 둘레길


설악동부터 유유자적 걸어가는 시골길


설악산 둘레길 1구간(가칭)은 설악동야영장 삼거리에서 시작해서 상복리를 지나 간곡리 윗대문턱에 이르는 8km 코스로, 예상시간 2시간 30분의 가벼운 트레일 코스다. 설악동 야영장 삼거리에서 출발하여 비포장도로를 따라 쭉 들어가면, 나지막한 숲 사이로 시골길이 나온다. 아름드리나무는 아니지만, 햇볕을 충분히 가려주는 숲이다. 5분쯤 걸어 들어가자,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편으로'설악약수온천 족욕장'이 있다. 지하에서 솟아나는 온천이지만, 더운 물이 아닌 차가운 물이었다. 물을 떠서 냄새를 맡아보니 유황냄새가 나는 것이 진짜 온천물이다. 오래 걸어가던 객이라면 신발끈을 풀고 여기서 잠시 여독을 풀고 가면 좋을 것 같다.

general_image

↑ 설악동 야영장 삼거리에서 7분거리에 있는 '설악산약수온천 족욕장'은 지나가는 객들의 피로를 풀 휴식처다.


오솔길을 따라 계속 나아가면 길옆으로 꽃이 만개해서 피어있고, 꿀을 따는 나비들은 쉼 없이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다. 돌담너머로 벌통을 관리하시는 아저씨의 손길도 바쁘다. 오솔길을 따라 쭉 가면 도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접어 들어가면, 다리를 지나 장재터 마을로 들어간다. 전형적인 시골마을인 장재터 마을은 한낮에도 조용하기만 했다. 둘레길 구간에서 처음으로 가게를 발견했다. '벼락바위 막국수'라는 곳인데, 시골에 있는 가든처럼 냉면, 막국수, 백숙 등을 판다. 지나가다 출출하면 막국수 한 사발하고 가는 것도좋을 것 같다(033-636-7826).

general_image

↑ 양봉장을 운영하시던 아저씨는 날아다니는 벌들에 개의치 않고, 묵묵히 일을 하셨다.


구불구불 마을길을 따라가니,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한 샘터가 나타난다. 땅에서 퐁퐁 솟아나오는 샘이 천을 이루어 흘러가는데, 필경 예전에는 이 곳에서 마을 아낙들이 모여 빨래도 하고, 아이들이 물지게를 지고 물도 날랐으리라. 그 시원한 물에 세수를 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 걷는다.

장재터 마을길을 벗어나 복골샘터길로 들어서니 널따란 논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을을 맞아 벼의 낱알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고, 바람이 불라치면 황금바다에는 잔물결이 일어났다. 농부들이 땀흘려 일구어낸 덕분에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설악산 자락을 찾아온 객들의 눈은 성실한 농부 덕분에 호사를 누린다. 산비탈을 따라난 길을 기분 좋게 올라간다. 약간 가파른 길을 따라 쭉 올라 재를 넘기 전 '복골 샘터'가 나타났다. 복골 샘터는 양양군에서 지정하고 3개월마다 수질검사를 수행하고 있는 약수터다.

상복리 마을에서 차를 타고 온 아저씨ㆍ아주머니는 이 물 맛이 너무 좋아 사먹던 생수도 끊고 약수를 떠다 마신다며 약수 자랑에 여념이 없다. 일반 약수는 떠놓으면 물이끼가 끼거나 맛이 변하는데, 이곳 복골 샘터물은 일주일이 지나도 맛이 변하지 않고 깨끗하다는 것이다. 샘터 옆 쪽박을 들어 물맛을 보니 과연 물맛이 깨끗하고 시원한 것이 좋은 샘이었다.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이곤 다시 말미골 재를 넘어간다.

general_image

↑ 복골 샘터물은 차고 깨끗한 맛이 일품인 약수로, 3개월 마다 양양군청에서 수질검사를 통한 관리를 꾸준히 하고 있다.


재를 넘어가니 산자락에 둘러싸인 상복리가 나타났다. 산비탈 아래에 위치한 상복리는 개 짖는 소리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경운기가 세워진 마당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를 태양과 함께 버무려 말리고 있었고, 길가에 피어난 봉선화가 알록달록 원색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마을 비탈길에 원목으로 지어진 멋스러운 정자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할머니 두 분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정자를 끼고 돌아 내려오는 작은 마을길. 돌담너머 밤나무엔 툭툭 터진 밤송이들이 탐스런 알맹이를 내비치고 있었다. 정자에서 바로 내려오면 상복리 마을회관이 있고, 그 아래에 수제돈까스와 추어탕 전문점인 '복골통나무집'과 케이크 만들기 체험을 해볼 수 있는 '비올레 카페'가 있다. 주변에 별다른 가게나 식당이 없기에 이 곳 또한 지나가는 길손에게는 소중한 식당이다(033-671-4236).

general_image

↑ 잘 익은 알밤은 밤송이 껍질을 벗어내고서 그 얼굴을 드러낸다.

general_image

↑ 개망초 위에 앉은 왕은점 표범나비가 여유롭게 꿀을 먹고 있다.


마을 끝자락에 다다르니 다시 논길이 이어진다. 저 멀리 지평 끝나는 곳에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회룡리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논길이 끝나는 곳에서 바로 임도로 들어서야 하는데, 최근에 생긴 군사격장이 임도를 가로막고 있다. 멀리서 사격하는 소리가 연신 들리기에, 아무래도 이 길로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싶어 사격장옆으로 돌아서 가기로 하였다. 사격장 옆에는 '설악뜰 펜션'이 멋지게 들어서 있다. 시골 한가운데에 꽤 큰 규모로 들어서 있는데, 건물수를 세어보니 10개 동 건물에 야외 바비큐장까지 따로 있다(033-673-5679). 펜션 옆 논길을 통해서 나지막한 야산을 넘기로한다.

풀이 무릎높이까지 자라있는 임도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길을 따라 직진해서 걷다보니 당황스럽게도 길이 사라져 버린다. 왔던 길을 되짚어서 가보니 펜션 옆 길로 올라온 후, 첫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가야 했음을 알게 되었다.

소나무에 흰색으로 표시된 오른쪽 길을 따라 올라가자 하늘이 터진 공간이 머리 위로 보인다. 저기가 어디인가 하고 올라가보니 잘 닦인 묏자리가 나온다. 볕이 좋아서인지 다람쥐 한 마리가 햇볕아래 바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묏자리 가장자리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가자 임도가 나오는데, 반대편에 육군소유지임을 알리는 돌말뚝이 박혀 있다. 회룡리로 가기 위해서 왼편 길로 접어들어 내려간다(상복리에서 회룡리로 산을 넘어가는 임도는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없어서인지 사라져 가고 있다. 추천하기로는 산을 넘지 말고, 산자락 우회도로로 회룡리에 가길 바란다. 거리상으로도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general_image

↑ 송암산 자락에 위치한 회룡리 논을 가로질러 가다보면 산도 바람도 구름도 하나가 된다.


길은 막히고, 다른 길을 찾다


임도를 타고 야산을 넘으니 산자락에 둘린 회룡리 논이 나타난다. 골짜기를 따라 억새가 주위에 수북히 자라나 있다. 오른편 송암산(767m)을 배경으로 해가 지는데, 그 모습이 또 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병풍처럼 펼쳐진 송악산 자락과 푸른 하늘을 가르고 비치는 햇살이 구름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을 이룬다. 간곡리로 넘어가기 위해서 내천을 건너 송암이라는 동네로 향한다. 간곡리로 넘어가는 길이 사유지인 과수원 한가운데로 나 있는데, 그 대문이 잠겨져 있다. 무단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쉽지만 코스를 변경해야만 했다. 기존 종점인 간곡리 윗대문턱을 회룡리 초등학교로 변경했다.

송암골에서 흘러나오는 내천을 따라 설설 걸어간다. 내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부근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회룡리다. 송암산에서 뻗어나온 산자락 한 줄기 끝에 위치한 회룡리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가옥들이 둘러싸듯 모여있다. 시계는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는데도, 학교건물에는 아직도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니 방과 후 활동이 한창인 듯 하다. 회룡초등학교 옆에는 버스정류장이 위치하고 있다. 버스를 타면 속초나 양양으로 갈 수가 있다. 회룡리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으니, 늦여름 매미소리와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섞여 화음을 이룬다.ⓜ
- Copyrights ⓒ 월간마운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