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때 인적공제 못받고 상속등재산관련 보장서 차별 보금자리주택 청약자격 없어
美·유럽은 동성 부부도 동일 대우 사회적 편견 없이 정당한 권리줘야
'결혼을 꼭 해야 할까'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족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가족을 이뤄 서로 기대고 싶어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굳이 혈연으로 인한 운명 공동체나 혼인이라는 제도로 묶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한 가족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단순한 추정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세대 혹은 2세대로 구성된 가구 중 부부가정이나 부부ㆍ미혼자녀 가정,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 등의 가족 구성을 제외한 기타 가구는 2010년 기준으로 118만7,000가구에 이른다. 전체 1~2세대 가구(1,191만 가구)의 10%에 해당하는 셈이다. 또 실제 혈연 관계가 없는 사람들끼리 가족을 꾸린 경우도 20만 가구에 이르고, 6인 이상의 비혈연 공동체를 의미하는 집단가구도 2만여 가구를 넘어 섰다.
1인 가구의 폭발적인 증가세도 단순히 미혼가구의 증가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이성 혹은 동성 간에 함께 사는 단순 동거의 증가도 1인 가구의 증가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현재 작성되는 인구 통계의 방식으로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주소지도 옮기지 않는다면 각각 미혼의 1인 가구로 집계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노인의 경우 상속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법률혼 대신 단순 동거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 동거나 사실혼 관계의 부부들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정상 가족이 아닌 이들은 각종 사회보장은 물론 세제 혜택, 상속 등 재산관련 보장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슬하에 1녀를 둔 회사원 한 모(42)씨는 매년 연말정산 시즌이 되면 입맛이 쓰다. 첫 결혼이 깨지는 과정에서 피차 끔찍한 경험을 했던 한 씨와 배우자는 재혼 가정을 꾸리며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한 씨는 "배우자도 있고 자녀도 있는데 부양가족에 대한 인적공제 등이 전혀 적용되지 않아 동료들과 비교해 손해가 막심하다"며 "혼인 신고만 안 했다 뿐이지 다른 가정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데 왜 이런 손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실혼 관계의 부부는 상속 과정에서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는 민법상 상속대상이 아니어서 상대의 유언장에 등재도 돼 있지 않을 경우 아무런 권리도 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만약 상속을 받는다고 해도 배우자 공제를 전혀 받지 못해 높은 비율의 세금을 물어야만 한다.
각종 사회 보장 혜택에서도 누락된다. 특히 공공임대주택 등의 경우 다자녀 가구나 3세대 가구 등 대가족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다. 신혼부부 특별 청약을 실시하고 있는 보금자리주택의 경우 적법한 혼인신고를 거친 가족에게만 청약 자격을 주고 있다.
정상 가족이 아닌 가족들은 자녀를 입양하는데도 큰 난관을 겪어야 한다. 입양 아동이 법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친생자와 같이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친양자 입양 제도는 민법상 3년 이상 혼인중인 부부가 공동으로 입양할 것을 최소 조건으로 하고 있다. 민법상 혼인은 통상 법률상으로 혼인신고를 한 경우를 말하기에 사실혼, 동거 관계의 부부 역시 해당 조건을 충족하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법률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독신자의 경우 친양자 입양제도에서는 배제됐다. 한 가정법원 판사는 "입양되는 아동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으로 고려되다 보니 다소 불안한 가정을 배제하려 한 것 같다"며 "다만 지난 2월 가정법원에서도 독신자에게 친양자 입양을 불허한 민법 조항이 독신자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심판을 제청한 바 있는 만큼 앞으로는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동성 커플의 경우는 두말할 나위 없다. 복지부 한 관계자는 "시설에 있는 아동들을 입양하는 경우 부모가 될 조건을 부부 등으로 한정한 조항은 없지만 아직 동성 커플에게 입양이 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족의 형태가 빠르게 다양화되고 있는 만큼 이런 관계들을 아우를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이 가진 대부분의 기능을 다른 곳에서도 해결할 수 있는 이상 굳이 전통적 가족의 의미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운명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가족을 꾸려갈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2월 미국연방법원은 캘리포니아주가 제정한 동성결혼금지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으며, 프랑스 등에서는 1999년부터 동성커플간의 결합을 공인하는 시민연대협약(PACS)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성 또는 동성 커플이 동거계약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3년 이상 지속적인 결합을 유지한 사실을 인정받으면 사회보장에서부터 납세, 유산상속, 재산증여 등에서 보통 부부와 똑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다양한 가족제도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영철 KDI 연구위원은 지난해 11월 '미혼율의 상승과 초저출산에 대한 대응방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유럽 주요국들의 경우 이성 간의 파트너십에 근본적인 변화가 형성되면서 아시아와 동일한 결혼 지연 현상이 나타나는 와중에도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동거ㆍ혼외출산 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버리고 결혼 가정과 동일한 사회적 보호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합진보당도 지난 3월 총선에 출마하며 '생활동반자 관계법' 도입을 약속했다. 해당 법이 도입되면 사실혼은 물론 동거, 동성커플, 비혈연공동체 등이 사회보장과 조세 등 재산과 관련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이 모(52)씨는 남편의 폭언과 도박 중독을 견디다 못해 6년 전 딸과 함께 집을 나왔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남편과 부부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제발 이혼해 달라고 수 차례 애원해 봤지만 남편이 동의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씨는 "내가 혹시 사고를 당해 죽을 경우 남편이 내 보상금이나 보험료 등을 받아갈 생각을 하면 너무 분하다"며"소송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식당 일하고 100만원 남짓 받는 돈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들이 탄생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전통 가족의 해체 역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1980년 2만3,000여건이던 연간 이혼 건수는 2000년 이후 매년 11만 건 이상 이뤄지고 있다. 이혼보다 더 큰 문제는 내부적으로는 이미 혼인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결혼 생활이 파탄 난 상태지만 외형적으로만 가족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경우다. 이 씨와 같이 법률혼은 유지한 채 따로 거주하는 별거 가정, 경제적 이유로 함께 살고는 있지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는 가정 등이 대표적인 예다. 실제 배우자가 있으면서도 혼자 살고 있는 가구주는 2010년 기준으로 53만4,000명에 달해 이혼 후 혼자 거주하고 있는 55만5,000명에 육박한다. 배우자는 배제한 채 자녀와 함께 사는 별거 가정이나 일단 외형적으로는 함께 거주하고 있는 가족까지 포함하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혼인이라는 제도에 묶여 불행한 결혼을 지속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불행한 결혼 생활이 지속되는 이유로 국내 이혼법의 문제를 든다. 헤어지길 원하는 부부들은 쌍방간 합의를 통해 이혼을 결정하는 협의이혼제도를 통해야 하며 만약 한 쪽이 이혼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혼 소송이라는 절차가 필요하지만 둘 모두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이혼 소송에서는 상대방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만 제기할 수 있는 유책주의(有責主義)를 택하고 있다. 잘못을 한 당사자에게는 재판상 이혼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반면 독일ㆍ영국 등 서구 유럽의 경우 장기 별거를 할 경우 혼인으로서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자동으로 이혼이 성사되는 혼인 파탄주의를 택하고 있다. 한 변호사는 "상대방에게 이혼의 사유가 있는 경우'너 혼자만 행복해지게 둘 수 없다'는 감정적인 이유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꾹 참고 이혼 동의를 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며 "서구처럼 혼인 파탄주의를 택하면서 대신 상대가 잘못을 저지른 경우 징벌적 위자료 부담액수를 대폭 늘리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