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탈북 버스운전사 "북한에서는 술에 취해 거리를 나돌아다니면 큰일 나"
"북한은 대중교통 수단이 열악해요. 북한 주민들은 50리(20㎞) 정도는 걸어 다닙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 땅에 버스회사를 차리고 싶어요."
21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 중부운수 버스 주차장. 오전 근무를 마치고 시내버스에서 막 내린 탈북자 출신 버스운전사 이원남(43)씨는 북한 말투로 미래의 꿈에 대해 털어놓았다. 1998년 탈북, 한국 땅을 밟은 이씨는 버스운전사를 선망하다가 2005년 꿈을 이뤘다. 오케이버스에서 시내버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유금단(여·42)씨와 함께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든 탈북자 시내버스 운전사다.
이씨 고향은 북한 3대 도시로 꼽히는 함경북도 청진시. 탈북을 결심했을 당시, 이미 북한 전력 사정은 최악이었다. 북한에서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 통하는 전차(電車)가 청진 같은 대도시에서도 1시간에 1대 정도 다녔다고 한다. 북한에서 10년간 군 복무를 했다는 이씨는 "5년 만에 공식 휴가를 얻은 적이 있는데, 교통수단이 없어 고향에 못 간 적도 있다"고 했다.
“어서 오세요.”21일 오전 시내버스 운전사로 일하는 탈북자 이원남씨가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 버스에 타는 승객을 반갑게 맞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청진에서는 전차만 왔다 하면 아수라장이 됐다. 전차를 타려는 시민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너무 많은 사람이 매달려 아예 요금을 걷을 엄두를 못 냈다고 이씨는 회고했다.
이제 서울 버스기사 생활 7년째. 아직 서울 승객들이 낯설다. 배차 간격을 지키느라 차를 천천히 몰면 "초보 기사냐"며 짜증을 내는 승객이 많다. "북한에서는 이렇게 서둘러 어딜 가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여기서는 뭐가 그리 바쁜지…"라고 말했다. 또 서울에서는 술에 취해 버스를 타는 승객들이 많은 것도 북한과 많이 다르다. "북한에서는 술에 취해 거리를 나돌아다니면 '수정주의자'로 몰려 큰일 납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잠을 청하는 승객들이 많은 것도 '왜 이리 피곤하게 사는지'라는 생각에 의아할 때가 많다.
◇필기시험만 12번 낙방
양천구 신정동 시내버스 차고지에서 만난 유금단씨는 2001년 10월 탈북, 2002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버스운전대는 2006년부터 잡았다. 유씨는 "함경북도 시골 마을에서는 버스는 물론이고 차 자체를 보기 어려웠다"며 "한국에 와서 첨단 버스는 처음 봤다"고 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노점상을 차리고 땅콩과 은행을 팔았다. "커다란 시내버스를 운전해보는 꿈이 이때 생겼어요. 노점상을 하면서 지나다니는 시내버스를 볼 때마다 '멋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버스운전사도 부러웠고요."
유씨는 어쩌다 시내버스가 노점상 앞에 멈춰 서면 반가운 마음에 땅콩을 한 움큼 기사에게 쥐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유씨는 "처음 버스 핸들을 잡게 된 날, 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 들었다"며 "힘든 건 전혀 없다. 날마다 참 행복하다"고 했다. 유씨는 아침마다 버스를 타며 인사하는 단골 승객들이 "여성 탈북자가 어떻게 버스 운전을 다 하느냐. 대단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줄 때마다 뿌듯하다고 했다.